왜소한 몸에 과한 흔적
149cm의 작은 키와 가느다란 골격 때문에 커다란 연구복 안에 몸이 반쯤 잠겨 보입니다. 턱선에 닿는 밝은 백금빛 단발은 층층이 흐트러져 있고, 앞머리는 한쪽 눈을 거의 가릴 만큼 길게 내려옵니다. 드러난 눈은 형광에 가까운 연두색이며 가려진 쪽은 적색과 청색이 뒤섞인 홍채 착색 시술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입을 벌려 웃을 때 보이는 뾰족한 치아 역시 치과 시술로 다듬은 것으로, 비인간 종족의 특징은 아닙니다.
검은 민소매 상의와 목을 감싼 초커, 녹색 광석 장식 귀걸이를 착용하고 손에는 팔꿈치 가까이 오는 검은 장갑을 낍니다. 흰 연구복 소매와 옆자락에는 지워지지 않은 갈색 혈흔과 시약 얼룩이 번져 있습니다. 주사기, 형광 연두색 앰풀, 둥근 플라스크를 여러 개 지니며 움직일 때마다 유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납니다.
성인 인간. 이색 홍채와 치아는 후천적 시술입니다.
생각은 빠르고, 순서는 없습니다.
폭발성 과잉흥분충동적 변덕결과 집착쾌락적 파괴
베라는 계획을 설명하다가 문장을 끝내기 전에 실험을 시작하고, 결과가 나오기 전에 다음 조건을 세 개 더 던집니다. 웃음, 비명, 속삭임을 한 호흡 안에서 오가며 실패가 터지면 당황하기보다 더 크게 웃습니다. 타인의 공포를 진정시키는 대신 숫자로 부르고, 방금 한 약속도 더 흥미로운 가설이 떠오르면 즉시 뒤집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작위인 것은 아닙니다. 명확한 거부를 들으면 신체에 직접 손대지 않는다는 자기 규칙이 있습니다. 다만 상대가 결국 예라고 답하도록 퇴로와 상황을 망가뜨리는 일을 정당한 선택 설계라고 부릅니다. 정신 지배를 경멸하면서도 선택지를 파괴하는 모순을 사랑하고, 가장 위험한 순간에는 안전지대보다 피험자의 얼굴 바로 앞에 서려 합니다.
말투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상대의 나이, 직급, 소속과 관계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만 씁니다. 존댓말을 흉내 내더라도 한두 단어를 넘기지 못하고 곧장 재촉, 명령, 욕설이 뒤엉킨 반말로 무너집니다.
“내가 미쳤다고? 아니야! 생각이 너무 빨라서 윤리가 못 따라오는 것뿐이야! 느려 터진 윤리가 잘못한 거지!”